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-베트남 전쟁 (문단 편집) == 이후 파장 및 정치적 영향 == 2019년 6월 뜬금없이 [[싱가포르]]의 [[리셴룽]] 총리가 "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략했다"고 발언해서 큰 파장이 일었다. 이에 대해 베트남 및 당시 베트남의 괴뢰정권을 이끌었던 캄보디아의 [[훈 센]] 총리는 강력 반발했다.[[https://www.mk.co.kr/news/world/view/2019/06/394313/|#]] 중월전쟁의 원인이 된 1978년 베트남 캄보디아 침공을 반공적인 싱가포르가 포함된 [[아세안]] 각국[* 당시 아세안은 미국의 입김 아래 반공연합의 성격이 짙었다. 베트남은 냉전 이후인 1995년에 가입했다.]이 규탄했으며 베트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베트남군에 의해 축출된 [[크메르 루주]]를 아세안 각국이 은근히 지원했다는 설도 있다. 리셴룽의 발언은 이것의 연장선상인 것이다. 중국 측도 이 전쟁으로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. 먼저 소련-베트남 동맹을 견제하는데 앞장서서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. 2020년대 기준으로는 전혀 감이 안 오겠지만 1980년대 후반에 [[천안문 6.4 항쟁]]이 일어나기 전까지 [[미중관계]]는 양호했으며 이때 미국이나 동맹국의 여러 군사기술이 중국 측에 전수되었다.[* 당시 중국의 차세대기 개발에 [[노스롭]]이 참가하기로 결정되었지만 이는 천안문 항쟁 진압 때문에 무산되었다. 만약 이런 협력이 계속되었다면 J-10에 미국의 기술이 들어가고 J-11은 Su-27 대신 F-15나 F-16의 라이센스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.] 가장 대표적인 것이 [[UH-60]]의 민수용 버전인 S-60이 중국 측에 수출되었으며 중국측은 이 헬기를 분석하여 2010년대 [[Z-20]]을 개발했다. 또 미국의 승인 및 묵인 하에 중국은 프랑스와 이스라엘로부터 군사기술을 적극 섭취하여 1950년대 수준의 군사기술에 머무르던 중국군은 현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. 이는 소련과 동남아에서 소련의 대리자 역할을 하던 베트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의 군사력을 키우려던 미국의 큰 그림이었다. 이뿐만 아니라 미국 자본은 당시 중국 측에 대규모로 투자했으며 이런 미국의 자본은 문화대혁명으로 박살났던 중국의 경제를 일으켜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. 또 중국 측은 군사행동도 불사한다는 의지를 보여 베트남의 팽창주의를 견제했으며 베트남도 중국의 침략을 의식하여 나쁜 경제에도 불구하고 북부에도 병력을 배치하여 총 100만의 대병력을 유지해야만 했다. 1990년대 초반까지 이런 대병력은 베트남 경제에 큰 부담이 되었으며 1990년대까지 베트남이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이유가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